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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로운 모순들

 

제임스 추척 손

 

현대의 부산한 도시들은 구름 떼처럼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지극히 드물게 몇 몇 사람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도시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나 옷차림 등 외부로 표출된 모습을 통해 그들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군중들 사이를 바쁘게 단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조각가 이용덕은 전자에 속한다. 그는 예리하고 섬세한 관찰력으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삶의 우아하고 활력에 찬 모습에 감탄한다. 그는 그들의 동작에 따라 옷이 구겨지고 당겨지는 힘의 요동과 신체의 움직임이 빚어내는 매혹적인 미학에 주목한다. 예술가의 눈에는, 일상 속의 사람들이 걷고 있거나 앉아있거나 혹은 뛰거나, 그들의 성별, 연령, 외적 조건과 관계없이 모두 미학이 되는 것이다.

 

화가는 캔버스와 색채를 사용하여 실재하는 삶의 모습을 묘사하고, 사진작가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의 빛과 음영을 렌즈를 통해 포착해 놓는다면, 조각가의 경우는 3차원적인 입체 형태를 통하여 물질성을 가진 대상과 공간 간의 관계를 3차원적인 존재로 나타내어 미학적 성취에 도달한다. 조각은 고대로부터 독특한 의미와 기능, 상징을 간직해 왔다. 다양한 시대의 조각은 어떠한 공통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즉, 인간 발전의 영적인 측면을 반영하여 나타난다. 원시 사회의 조각은 인간이 누리는 삶의 모습과 신념 그리고 경험을 보여주며,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신들의 모습은 실제로는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가치관의 축소판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리스 예술가들은 인간의 모습과 특징, 그리고 감정을 응용하여 신들을 상상하고 이상적인 성품을 묘사하였던 것이다. 한편 로마 시대의 조각은 제국의 권위를 선전하는데 초점을 두었으므로 실용성과 효용성을 강조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동작, 자세, 표정, 의상, 헤어스타일, 무기 등의 묘사는 모두 위엄을 상징하고 장엄한 형태와 사치스러운 장식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었다. 이용덕의 작품들이 이와 같이 인간의 모습에 부가된 요소들이 균등한 비중을 갖고 표현에 도입된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추구와 맥을 함께하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주관적 시선을 최소화하고 객관화시킨 삶에 대한 낙관적 신뢰의 태도, 그리고 삶의 즐거움이 내재된 모습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된다.

 

이용덕의 작품을 보는 것은 셜록 홈즈의 탐정 소설을 읽는 것과 같다: “피상적으로 목격되는 사실”로 부터 시작하여 사고와 현실의 재구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주관적 경험과 분석적인 논리는 포기해야 한다. 이용덕은 일반적이라서 친숙하게 보이는 3차원적인 입체조각을 안쪽으로 뒤집어 관객에게 제시함으로써, M. C. 에스터(M. C. Esther)의 일러스트레이션이 관객을 시각적인 환상과 상상적인 세계로 유도하는 것과 같이, 관객과 시각적 환상의 심리적인 게임을 걸어오는 것이다. 이용덕의 역상 조각(Inverted Sculpture: 조각이란 실재하는 입체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모든 입체 형상을 표현할 때 평면을 기준 삼아 반전시켜서 대척점을 찾아 형상을 평면보다 오목 들어가도록 제작하는 이용덕의 새로운 조각 형식) 작품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은, 관객이 작품을 처음 대할 때 생긴 초기의 인상을 뛰어넘어 “사실(fact)”에 대해 가진 자신의 이해가 단지 자신의 의식적 판단에 따른 오류에 불과하였음을 발견하면서 경험하는 경이와 놀라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간에 대해 관객이 가지고 있던 지각체계는 빠르게 사라져버리고 현실체계로부터 이탈하여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 관객들에게 벌어지는 이러한 무의식적인 몰입은, 마치 작가가 스스로 “내가 보는 것이 사실인가?”라고 반문하는 것처럼, 조각의 공간 감각에 대한 보다 심오한 철학적 이해로 이어진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내가 촉각을 통해 느끼는 것이 진정 사실인가?”, “내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이 진정 사실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많은 조각가들은 음의 공간을 탐구하려고 시도하였다. 러시아 예술가인 알렉산더 아키펜코(Alexander Archipenko, 1887-1964)는 역상을 사용하여 인체의 볼록한 부분을 표현하는 기법을 시도하였고, 투명한 재료를 사용하여 육중하고 폐쇄적인 구조가 조각에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의 조각은 후대 조각 역사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용덕의 작품은 사유의 전환과 독창적 조형 추구 양 측면 모두에서 진실을 추구하며, 조각과 공간 간의 상호 관계성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 입체인 3차원이 아니며, 역상 기법으로 표현하여 볼록한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조각 작품의 주위 공간에 대해 의미를 환기하고 탐색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효과는 그의 엄밀하고 독특하게 만들어진 “구성(composition)” 에 기인한 것이다: “자연에 있어서, 사물은 단일하게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구조에서, 인간의 판단에 의해 모순들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이용덕의 작품을 감상하려면 다면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선택된 주제는 단순하고 일상적이며 자연스럽다. 그의 조각 기법이 독특한 것은 물론이고,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활기차고 자연스러운 시각적으로 진솔한 효과는, 색채나 설치, 전시 등에 나타나는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요란하지 않게 그의 작품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독자적으로 창안된 조각 기법을 사용하여 대상으로 선택된 인물과 주변의 빈 공간을 상호 치환함으로써, 빈 공간이 하나의 주체적 대상으로 전환되고 비워진 인물의 모습이 그 일부가 되도록 연출하여 놓는다. 이와 같이 역전됨으로써 조각에 나타난 조형적 요소는 로댕(Auguste Rodin, 1840- 1917)이 강조하던 그의 조형개념과 무관하지 않다. 로댕은 깊이에 기반을 둔 조형 개념을 주창하였는데, 대상의 모습은 외부 윤곽을 따라 흐르는 선의 연속 보다는 깊이에 대한 관심과 통찰이 스케치에 반영되어 결정된다는 것이다.

 

도덕경의 첫 번째 장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무위는 천지의 근본이며 존재는 모든 사물의 어머니이다”. “우리는 무위(Non-Being)로부터 사물의 본질이 품은 미묘함을 본다. 우리는 존재(Being)로부터 사물의 다양성의 장대함을 본다.” “사물은 동일한 현실의 신비로부터 나오지만 다양하게 다른 이름으로 명명된다.” 노자는 무위 속에 존재가 있다고 믿는다. 무위라는 원리가 이해되면 인간은 소박하고 겸허한 태도로 우주의 끊임없는 변화를 상상하게 된다. 이용덕의 작품 속에는 음과 양, 존재와 부존재, 가상과 실체 등 모순들의 조화가 펼치는 향연이 형성 된다.


 

---이용덕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된 곳은 2004년 상해 미술 전람회(2004 Shanghai Art Fair)의 휑하게 큰 전시장에서였는데, 마치 신선한 공기를 만나 숨 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함축성 있는 작품은 나에게 오래 동안 남는 인상을 주었다. 후일 표갤러리를 통하여 그의 작업 배경과 독창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 대해 보다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 11월 북경에 있는 중국미술관 초대로 그의 개인전이 개최될 예정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어서 마카오에서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마카오에서는 예술의 성장이 그다지 활발하지 않고 게임 산업이 다른 모든 분야에 상대적으로 활성화 되어있다. 창작, 특히 조각 부문이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었으며, 기성세대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리얼리즘 스타일은 현대의 세계 미술계의 성향과 잘 부합된다고 볼 수 없다. 마카오 미술대학 출신의 신세대는 아직 충분한 체험과 경륜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보며, 또한 공간의 부족이 조각예술 발전의 저해요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아 마카오 시민들이 대체적으로 단순하고 순수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술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긍정적으로 예술을 즐기는 태도가 비록 잔재주에 치중하는 혼탁한 대도시 생활에서 나온 태도 보다 분명히 바람직하고 나은 것이라고 인정한다 치더라도 예술의 발전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용덕의 도시적 삶의 풍경은 항상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느껴져 접근 가능하며, 이로 인해 관객은 그의 작품이 활력이 넘치면서도 세계화 물결에 따른 대도시의 상업적 지향성이나 문화적인 공격성이 없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매우 친숙한 느낌을 주며 뛰어난 표현 기법을 통해 더욱 그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2006년 3월 3일 전시회가 개최되고 나서, 시민들과 관광객들, 특히 젊은 학생들은 많은 매스컴을 통해 소개된 뉴스 보도를 의심하는 마음으로 직접 전시회를 관람하러 온다. 그 결과 그들은 이용덕의 독자적인 창의성을 높이 평가하게 되며, 심지어는 그의 작품을 전시한 마카오 미술관 측에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전시회를 주관한 큐레이터로서, 관람객들이 “그림자의 방”에서 벽에 박혀 고정되어버린 그들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나타내는 그들의 진정한 희열과 유머러스한 유희적 반응으로 즐기는 것을 보며, 그들을 전율시키는 예술의 힘이 단순성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행복해진 마음을 품고 미술관을 떠나는 관람객들을 보면서, 이용덕 교수의 친절하고 점잖은 용모가 떠올랐는데, 이것이 사람들을 평화롭게 이끄는데 영향을 주는 그 무엇이며, 진정으로, 이러한 효과는 돈이나 물질적 소득으로는 이룰 수 없는 그 이상의 보상인 것이다.

 

- 마카오미술관 큐레이터   제임스 추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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