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덕, 시간을 조각하다.
최태만/미술평론가
다시 조각의 조형요소에 대해 생각한다.
한 남자가 세숫대야에 받아놓은 물로 머리를 닦고 다시 손바닥에 물을 담아 얼굴을 씻는다. 이윽고 두 손으로 코와 입을 감싼다. 이 연속 동작은 얼핏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의 연속사진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화면 속 주인공의 세수하는 모습을 여러 장으로 촬영한 사진에 기초하여 제작된 것은 아닐까 상상한다. 나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사진을 옮겨 그린 회화인가, 조각인가? 전체적으로 무채색인 가운데 손 부위만 채색하여 손의 입체감을 강조하고 있으나 이것은 회화가 아니다. 편집이나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 포착한 사진처럼 사실을 정직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사진의 진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네 개의 프레임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사진이나 회화처럼 이차원의 평면 위에 인화되거나 그려진 이미지가 아니라 채색된 부조이다.[1] 부드럽게 접힌 옷의 주름과 오른쪽 발 뒤로 약간 튀어나온 세숫대야를 보라. 놀라운 사실은 돋을새김처럼 보였던 볼륨이 실제로는 화면 위로 볼록하게 도드라진 것이 아니라 속으로 움푹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돋보이는 점은 환영(illusion)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공간과 빛이다. 사실 환영은 물질의 실재감이 두드러진 조각보다 재현적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착시의 효과이다. 그래서 허버트 리드(Herbert Read)는 ‘회화가 이차원의 평면 위에 공간의 환영을 그려 보려는 것이라면, 조각은 입체물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했다.[2] 과연 그럴까. 이용덕의 <세수(wash up)>는 조각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만드는 여러 요소와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전통적인 장르 개념으로서 조각은 점토, 밀랍, 돌, 나무, 금속 등의 전통적 재료는 물론 비철금속, 플라스틱 등 다양한 현대의 합성 물질을 재료로 사용하여 구체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삼차원의 입체예술이라고 정의된다. 물질을 가공한 삼차원의 입체란 점에서 조각은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므로 중력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체적을 지닌 입체인 까닭에 높이와 너비, 그리고 깊이를 가진다. 조각의 중요한 조형요소의 하나인 물질의 덩어리 또는 질량(mass)은 물리적 무게와 밀도로서 실체감을 부여한다. 어떤 물체가 공간에 놓이게 되면 그것은 다른 모든 물체와 구별되면서 한정된 공간을 차지한다. 물체가 점유하는 공간의 양을 ‘부피’ 또는 ‘용적’이라고 하고, 대상물이 차지하는 물질의 ‘양’을 ‘질량’이라고 한다.[3]
조각이 차지하거나 포함하는 삼차원의 공간인 체적(volume) 또는 부피는 작품의 크기와 범위, 깊이, 높이, 폭을 포함하여 조각의 실체감을 형성하는 요소로서 조각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요소이다. 아울러 이 요소는 조각이 주변공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각의 고체 부분 또는 질량을 포함하여 조각 자체가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공간을 ‘실제 부피(positive volume)’라고 한다면 조각 내부나 주변의 빈 공간을 포함하여 조각이 시각적으로 차지하는 영역을 암시적 또는 ‘음의 부피(negative volume)’라고 한다. 조각에서 질량은 종종 물질적 존재감을 설명하며, 부피는 물질과 그것이 형성하거나 포함하는 공간을 모두 다 포함한다.
덩어리나 부피는 모두 공간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공간 역시 조각의 중요한 조형요소이다. 이 공간은 조각이 차지하는 양의 공간(positive space)과 주변의 ‘빈’ 공간(negative space)으로 나뉜다. 조각 자체의 물리적 형태, 즉 질량과 형태를 가진 고체 부분을 ‘차 있는’또는 양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조각 주변이나 조각 내부의 틈, 구멍처럼 ‘비어 있는’ 영역 또는 구성 요소들 사이의 공간을 ‘음의 공간’이라 부를 수 있다. 음의 공간은 덩어리의 윤곽과 대비를 이루며 형태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특히 빈 공간은 빛과 그림자에 의해 깊이감은 물론 움직임의 효과까지 거둘 수 있도록 만든다. 빛은 조각의 입체감과 함께 재료인 물질의 질감을 강화한다. 그런데 <세수>에서의 빛과 그림자의 상호작용은 음의 공간 속으로 빛을 빨아들이는가 하면 표면과 충돌하며 실제보다 더 실감나는 공간을 창출함으로써 깊이감과 움직임, 그리고 시각적 흥미를 고양시킨다. 이용덕의 작품에서 조각에 부여된 전통적인 조형요소인 덩어리를 통해 물질의 존재감을 강조하거나 실제 부피는 무시되는 대신 그것이 빠져나간 비어 있는 부피가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세수>에서 볼 수 있듯이 이용덕의 ‘역상조각’은 빈 공간에 부피를 부여함으로써 기본적으로 부조인 작품에 시각적 환영을 창출하여 체적을 지닌 실제처럼 느끼도록 한다. 체적과 부피를 지닌 것으로 지각되는 형상은 돌출이 아니라 공간 속으로 함몰된 빈 공간이 만들어내는 눈속임(tromp-l’oeil)이자 환영이다. 그의 작품은 이차원적 평면에 공간의 환영을 그려 넣은 것이 아니라 삼차원의 공간을 구현함으로써 회화와 조각의 장르적 경계를 넘나든다. 조각이면서 회화인 <세수>는 평면과 입체, 회화와 사진, 실재와 그림자 사이의 경계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이미지의 존재방식에 대해 생각하도록 한다. 이 점에 대해 작가는 ‘사진적 객체(실제 이미지), 사진(사진적 객체의 이미지), 3D 조각(사진 속 이미지)은 모두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현실 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이들이 비록 서로 다른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객체들의 이미지나 관념(가정된 사실)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다른 물질로 이식되므로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다’고 했다.[4]
지금까지 훑어본 바대로 이용덕의 작품에서 중요한 조형요소는 조각을 규정하는 질량이나 형태, 선, 질감, 크기, 비례, 균형 등보다 공간과 부피, 그리고 빛임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작품에서 공간과 부피는 채워진 것이 아니라 비어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역상조각은 빈 공간이 만들어낸 가상의 부피가 부여하는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관계의 역전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었으므로 초기 작품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조각이다.
이용덕은 1986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가을의 사념에서>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 구상 인체조각가로 등장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이 과거 관전이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승계한 것이란 점을 주목할 때 그의 우수상 수상은 국전의 전통을 이어받고자 한 의도가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1981년부터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했던 미술대전의 조각 부문 대상은 추상조각을 추구하던 정현도, 김진성, 문인수 등이 수상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듯이 구상조각은 중심으로부터 밀려난 상태였다. 그런데 인체의 재현에 충실한 이용덕의 조각이 우수상을 수상한 것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 조각은 국전을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국전은 젊은 조각가들의 등용문이자 아카데미즘의 견고한 아성이기도 했다. 인체를 변형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한국의 인체 조각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김경승에 이어 해방 후 백문기, 임송자, 강관욱 등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가 조각을 수학하던 197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추상조각과 미니멀리즘이 ‘현대성’을 대표하는 경향으로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인체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조각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197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사회로부터 소외된 소수자를 주제로 한 현실참여적인 경향을 추구한 심정수와 중력과 무중력이란 물리학적인 관심을 인체로 표현한 김영원의 등장으로 인체를 재현하는 조각의 폭이 확대되기는 했으나 인체조각은 여전히 구태의연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이런 분위기와 상관없이 이용덕은 1987년에 <기념촬영>으로 미술대전 조각 부문의 대상을 수상하면서 신예 조각가로 주목받았다.
<가을의 사념에서>나 <기념촬영>은 모두 인체를 충실하게 재현한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가을의 사념에서>가 환조와 부조의 형식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표면의 질감에서도 상반된 방식으로 표현하여 이질적인 요소를 한 작품에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반가좌를 하고 한 손으로 턱을 괸 여자 옆에 나란히 앉은 여성, 그들 뒤로 한껏 멋을 부린 여성과 어깨를 내밀고 있는 여성, 그들보다 뒤에 서 있어서 원근법에 따라 형태가 희미한 여성으로 구성된 <기념촬영>은 평범한 일상을 포착한 사실적인 조각이다. 이 작품에서도 <가을의 사념에서>처럼 환조와 부조를 결합하여 정면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점은 두 작품의 원형이 사진임을 암시한다. ‘일순간이면서 지루한 시간의 연장이기도 한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조각은 서사적이면서 노스탤지어를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노스탤지어는 <나는 비싸지 않다(i am not expensive)>,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I am still here)>와 같은 역상조각에서도 발견된다. 노스탤지어는 그의 작품이 일상적이면서 특정한 장소에서 포착한 순간의 추억을 응고한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나타난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기념촬영>에서 다섯 명의 인물들은 모두 카메라가 놓였을 정면을 바라보고 있으나 실제로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작품 앞에 선 우리이다. 우리가 작품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우리는 작품 속 인물들에게 보이는 존재가 된다. 이것을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말한 응시라고 할 수 있다. 결핍의 원인이자 욕망의 대상인 이 응시는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두 작품에서 표현된 또 다른 정서는 잔잔한 권태로움이다. 그런데 이용덕이 인체조각을 자신의 작업방향으로 정했을 때 앞의 두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정서와는 다른 방향에서 구상 인체조각을 추구한 류인이 등장했다. 인체를 해체하거나 변형을 넘어서 남성주의적, 영웅적 제스처의 과도한 강조를 통한 파토스의 노출이 두드러진 류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으로 ‘바로크적 격정성’을 들 수 있다.[5]
류인처럼 고양된 격정은 아니더라도 1980년대 후반 이용덕의 작품에서도 이야기의 전달을 위해 인체를 해체하거나 학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변형한 사례는 있다. 전형적인 인체조각이면서도 한쪽 다리의 양감을 도려내 이 주인공에 대한 정서를 표출한 <친구가 가고 나니…>를 비롯하여 단순하게 처리한 신체를 중력의 법칙과 상관없이 공중 부양하듯 한 손에 의지한 채 허공에 띄워놓은 <하늘에 말뚝박기>, <인내의 물>, <길손과 선 땅>, <땅으로부터> 등은 모두 인체를 통해 자신의 관념과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한 쪽 팔을 가로로 뻗은 두 개의 남성 상체를 나란히 놓아 마치 문과 같은 형태로 설치한 <의지의 문>은 1980년대를 풍미한 ‘새로운 형상미술’과 무관하지는 않다. ‘새로운 형상미술’이 곧 민중미술로 수렴되며 사회의식을 반영한 구상조각으로 발전하였다면 미니멀리즘과 민중미술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난지도’와 ‘메타 복스’는 당시 유입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에 불을 붙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용덕은 1986년에 창립한 ‘현(現)·상(像)’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이용덕이 1988년 미술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을 때 그의 미술대학 조소과 동기인 윤영석은 인체조각에 전념하고 있는 그를 우려하며 “그의 인물상들은 ‘사실적인 감각에 대한 감흥’이 ‘현실에 대한 지각이나 주제의식’보다 우선하는 듯이 보인다”라며, 그가 “한 개인에게 나타나는 형성의지를 가지고 인물상의 관념적 현현이라는 과제 앞에 서 있다”고 했다.[6] 그러나 이용덕은 친구의 걱정과 의구심을 담은 조언에도 불구하고 “나의 체험이 신작로를 피해 오솔길을 홀로 거닐 것을 기대하자”며 다짐했다. 과연 그는 그날 이후 그 오솔길로 걸어왔다.
1989년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1년 서울의 최갤러리에서 ‘모순의 충돌과 그 수용’을 제목이자 주제로 두 번째 개인전을 가졌다. 이 전시에서 대립과 모순의 수용은 음양을 통합하는 과정으로서 그의 작품이 사변적인 측면을 띠는 이유도 이러한 상대성에 대한 자기동화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7] 그는 조각의 방법에서 모순의 수용을 한 작품에 양각과 음각이 동시에 나타나는 방식으로 표현했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 1986년에 제작한 <올림픽의 매혹>을 들 수 있다. 남성의 상체와 옆으로 힘차게 뻗은 팔을 음각으로 표현한 대신 불끈 쥔 주먹은 양각으로 표현하였으나 근육의 양감은 실물을 필적하도록 제작한 이 작품은 부조이면서 환조이다. 마치 인체를 가둬놓은 벽처럼 표현한 부조 위로 승리를 위해 전력으로 달리는 육상선수가 아니라 한 샐러리맨이 가방을 끌어안은 채 정신없이 질주하고 있다. 단단한 근육질의 팔뚝 위에 새겨진 ‘1988’이란 숫자와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내달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스포츠처럼 사회적 성공을 향해 신체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기를 강요하는 사회로 향한 이미지로 저항하기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개인전 후 독일로 유학했던 그는 귀국 후인 2000년 모란미술관에서 개인전 ‘존재의 양면에서’를 가지며 과거의 인체조각과 완전히 다른 작품을 발표했으나 그가 추구하는 방향은 여전히 상호대립하는 요소, 즉 실재와 그림자, 빛과 어둠, 채움과 비움을 한 작품에 통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그의 역상조각이 현재의 형식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전시였다.
시간의 결빙
두 번째 개인전을 가진 후 이용덕은 독일 통일 후 베를린장벽의 유산이 여전히 남아있는 베를린으로 유학했다. 1994년 가을, 이용덕은 베를린의 한 벼룩시장에서 초등학교 일학년 남자 어린이 33명이 담임교사와 함께 1920년 10월 24일에 촬영한 기념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의 뒷면에는 ‘Kl. K. 7d’란 문자와 함께 이 사진이 촬영된 일자는 물론 사진에 등장하는 소년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1920년은 제1차 세계대전에 패전한 독일제국이 붕괴하고 독일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이른바 바이마르공화국이 수립된 지 일 년이 지난 시기였다. 이 어린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해 또는 바로 직전에 태어나 전쟁 시기의 기근과 질병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이 사진을 찍은 이후에는 정치의 주도권을 놓고 극좌와 극우가 대립하던 혼란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이들이 막 스무 살이 될 즈음인 1933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이른바 나치가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사진 속 어린이 중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가 나치가 수립한 제3제국에서 히틀러 총통이 자행한 전쟁에 동원되었을까. 그가 이 사진을 발견한 1994년에 이미 80대에 이른 소년들은 여전히 살아있었을까. 이 순진한 질문은 사진의 속성을 향수(nostalgia)라고 말했던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주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녀는 ‘사진에 찍힌 아름다운 대상도 이미 나이 들거나 썩어버렸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이 언젠가는 마주쳐야 하는 죽음, 취약성, 변화에 참여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래서 모든 사진은 ‘이미 죽어버린 것’ 또는 ‘임박한 죽음(memento-mori)’을 예고한다.[8]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역시 사진을 장차 숙명적으로 맞이할 죽음과 연결한 바 있다.
사실, 사람들이 나를 찍은 사진에서 내가 겨냥하는 것(내가 사진을 바라보는 의도)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사진의 본질(eidos)이다. (…) 나에게 있어서 사진가의 대표적인 기관은 눈이 아니라(눈은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 손가락이다. 손가락은 렌즈의 방아쇠, 건판(乾板)의 금속성의 미끄러짐과 (카메라가 건판을 사용하고 있을 때) 연결되어 있다.[9]
그렇다면 이 어린이들의 단체사진을 발견한 이용덕은 이 낡은 이미지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발견하였을까.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많은 어린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사진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사진이란 매체가 가진 운명, 즉 손탁이 말한 것처럼 ‘사진은 바로 그 순간을 잘라내어 얼어붙게 함으로써 시간의 무정한 흐름을 증명’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가 발견한 사진 못지않게 그것을 조각으로 재현한 어린이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감정은 바로 향수이다.
사진을 입수한 그는 사진 속 소년들의 얼굴을 석고로 실물 크기로 복원했다. 그는 시무룩하거나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정면을 응시하는가 하면 척박하고 불길한 시대를 예감하듯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이들의 얼굴은 사진에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충실하게 재현했다. 사진 속의 어린이 표정이나 그것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이용덕의 조각 속 어린이들의 표정은 ‘불길한 시대를 예감’하게 만든다. 이 표정에서 나는 푼크툼(punctum)을 떠올린다. 사진을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란 개념으로 해석한 이론가는 롤랑 바르트였다. 그는 라틴어로 ‘점’을 의미하는 ‘푼크툼’을 찌름, 작은 구멍, 작은 반점, 작은 흠이며 주사위 던지기라고 했다.[10] 이용덕이 발견한 낡은 사진은 바르트가 푼크툼에 대해 ‘마치 화살처럼 사건의 현장을 떠나 나를 꿰뚫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용덕의 마음을 찌르며 지나간 시간, 그러나 사진 속에서 응결된 시간을 ‘지금, 여기’로 소환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나 역시 33개의 소년상과 나란히 전시된 빛바랜 그 기념사진이 지닌 강한 인상과 흡인력에 끌려 사진 속, 그리고 이용덕의 조각 속 어린이의 시무룩하거나 겁에 질린 시선 앞에 뜨끔한 통증을 느낀다.
사진 속 어린이들은 같은 형식의 교복을 입지 않았고 앉거나 선 자체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그들의 의복을 마치 군대의 제복처럼 단일하게 통일하여 표현했다. 특히 테라코타로 제작한 어린이들의 신체는 같은 거푸집에서 주조한 것처럼 획일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 신체 위에 석고로 만든 머리를 조립하여 이들을 일렬로 세웠다. 그래서 사진에서는 바닥이나 계단에 앉아있거나 뒷줄에 서 있던 33명의 어린이들은 모두 검은색 제복을 입고 제식훈련을 받듯 차렷 자세로 얼어붙어 있다. 이처럼 사진 속 어린이들의 표정이나 흑백사진의 퇴락한 색감과 분위기가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인상은 <kl. k. 7d. 24. 10. 1920 berlin>에서 개인의 개성은 사라지는 대신 집단의 동질성은 강화되는 전체주의의 우울한 집단초상으로 대체된다. 제복과 부동자세, 일렬로 줄을 세운 배치방식은 규율과 통제, 일사불란한 질서를 상징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각자 다른 표정과 개성을 지닌 어린이들이 곧 경험하게 될 나치의 파시즘이 불러일으킨 공포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치 체제에서 학교는 게르만 민족주의를 주입하고 학생들이 모범 국민의 덕목을 지키도록 훈육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이렇게 교육받은 이들은 장차 인종청소의 충실한 군인으로 양성되어 전선으로 향한다. 이용덕의 조각을 집단적 기억과 사회적 맥락으로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도록 유도한다고 읽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스투디움을 읽는 것과 같다. 바르트는 라틴어 스투디움(studium)은 무엇에 대한 전념, 누군가에 대한 호의, 즉 일반적인 정신의 집중을 의미한다고 했다. 스투디움이 문화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열심이기는 하지만 특정한 격렬함을 포함하지 않는 거의 길들이기에 가까운 평균 감정에 속하는 스투디움을 알아본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사진가의 의도와 마주침을 의미한다고 했다.[11] 그렇다고 스투디움이 푼크툼보다 하위에 놓인 것은 아니다. 작품에 담긴 지시적, 문화적 코드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스투디움이므로 우리는 이 작품에서 집단주의의 끔찍한 역사를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33명의 어린이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는 조각을 통해 결빙된 시간도 함께 본다. 언젠가 이용덕은 “나는 인물들의 순간들이 과거로 사라지는 것을 포착하여 ‘영원히 그 순간’을 저장해 놓고자 작품을 제작한다”고 밝혔다. 작가는 과거의 사진을 바탕으로 조각을 제작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기억도 입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베를린예술종합대학에서 마이스터슐러 과정을 졸업하던 해인 1997년 그는 이 작품을 베를린 슐뮤제움(Schulmuseum)의 개인전에서 공개했다.
시간의 결빙이란 특징은 2000년 모란미술관에서 귀국전 형식으로 가진 개인전에서 발표한 <나르시스의 호수>에서도 발견된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트루비우스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우주를 축소한 소우주란 르네상스적 관념을 도해한 <인체 비례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이론과 자신의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똑바로 서서 두 손을 수평으로 옆으로 쭉 뻗었을 때 인체가 사각형과 만나는 반면 두 손을 머리끝까지 뻗고 다리를 벌렸을 때 원의 지름과 만나는 인체를 그렸다. 가장 이상적인 비례를 보여주는 이 드로잉은 왠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자신이 거울 앞에 서서 그림 속 인물처럼 손과 다리를 뻗은 모습을 기초로 그린 자화상처럼 보인다. 그런데 원반 위에 두 팔을 벌린 채 엎드린 <나르시스의 호수> 속 인물은 이상적인 인체의 비례를 표현한 것이라기보다 블랙홀과도 같은 수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자포자기 상태와도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낮은 높이의 원반에 얕게 채워진 물의 표면과 직면하는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이 인물을 매달아 놓았다. 엎드린 상태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물과의 극적인 접촉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표정은 볼 수 없으나 평범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으므로 작가의 자화상일 것이란 추론은 가능할 것이다.
아래로 곤두박질치던 인간이 수면과 접촉하기 직전의 찰나를 마치 고속카메라로 포착한 것처럼 설치해 놓은 이 작품은 속도와 중력이 정지된, 그래서 시간이 얼어붙은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시간의 결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직낙하하는 남자가 수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단순히 물리적으로 반사된 자아가 아니라 수면(거울)에 의해 가시화된 낯선 존재와 대면한다. 수면은 단순히 이 남자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응시한다. 찰나와도 같은 짧은 순간 이 남자는 보는 주체가 아니라 보이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이 남자는 수면 위에서 자신이 세계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을 타자의 관점에서 경험한다. 수면과 마주치는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보는 동시에 보이는 상태에 놓이며 수면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주체가 전면적으로 노출되는 그 순간은 시간이 얼어붙는 찰나이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정지된 것은 아니다. 이 순간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적 경계가 허물어지며 서로 중첩된다. 그래서 우리는 수직낙하는 사람을 포착한 순간을 그 자체로 완결된 멈춤으로서가 아니라 연속적인 시간의 한 단면을 추상화한 것으로 지각함으로써 시간의 역동성도 경험할 수 있다.
시간의 이식 또는 지속
2024년 토탈미술관에서 개최한 이용덕 개인전의 제목이자 주제는 ‘순간의 지속'이었다. 이 문구는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순수지속’을 떠올리게 만든다. 시간을 수학적으로 측정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는 과학의 공간화된 시간 개념에 맞서 창조로서의 시간을 강조한 베르그손은 ‘우리가 시간의 본성을 천착할수록 더 우리는 지속이 창발(invention), 형태의 창조,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의 연속적인 만들어냄임을 이해할 것’이라고 했다.[12] 이용덕이 말하는 ‘순간의 지속’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래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아있는 기억의 보존이자 창조로서의 시간에 내재한 지속과도 맞닿아있다. 이런 점은 “나는 사라져 가는 인물들이 작품 안에서 기억되는 과거를 저장해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현재’에 머물게 하고 싶은 것”이라고 밝힌 이용덕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용덕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가 ‘시간’이다.
전통적으로 조형예술은 점·선·면·형·색·질감 등의 공간적 요소를 특징으로 하므로 시간은 부차적인 요소로 치부되었다. 정적인 조각에서 시간은 조각의 조형요소인 움직임(movement), 즉 ‘암시된 움직임’을 통해 구현된다. 조형예술 또는 시각예술이 공간 속에 시간을 압축하고 있다면 시간의 순차적 흐름을 바탕으로 구성되는 문학, 공연, 영상은 시간예술의 특징을 지닌다. 이런 점을 인식하여 시각예술과 문학예술의 매체적 특성을 주목한 이론가로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을 떠올릴 수 있다. 그는 <라오콘>에 대한 빈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의 해석을 반박하며 문학과 시각예술의 차이에 대한 비교를 시도했다. 레싱은 회화가 공간 속의 대상을 표현하여 한 순간을 시각적으로 포착하는 반면, 시는 시간을 통해 사건을 전개하며 연속적으로 행동을 포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학예술과 시각예술의 차이를 비교하며 ‘하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부분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가시적, 연속적 행위라면 다른 하나는 공간에서 다양한 부분이 전개되는 가시적이고 정적인 행위’라는 점을 강조했다.[13] 자신의 논리를 논증하기 위해 라오콘이 고통과 탄식을 절제한 이유를 밝히면서 레싱은 ‘회화는 모방의 수단이나 기호가 오직 공간적으로 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표현을 포기해야 하며, 따라서 연속적인 행동은 본질적으로 회화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 회화는 공간에서의 행위, 다시 말해 단순한 몸짓에 만족해야 하며, 이 몸짓을 통해 행위를 추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순간적인 아름다움’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회화는 단 한 순간에 국한되므로, 가장 의미심장한 순간, 즉 관람자가 이전에 무엇이 있었고, 이후에 무엇이 있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5] 거듭하여 그는 ‘(조형)예술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단 한 순간만을 표현할 수 있으며, 화가는 이 순간을 단일한 시각에서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작품을 단순히 한 번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여러 번에 걸쳐 감상하고 숙고해야 하므로 선택되어야 하는 것은 가장 풍부한 순간과 가장 풍부한 표현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16] 레싱에 의해 문학과 미술의 장르적 특수성이 정리된 점은 있다. 그러나 레싱은 빈켈만이 그리스 조형예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조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드러낸 점에 대응하여 ‘문학적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매체론적 측면에서 문학과 미술의 본질을 규명하고 미술에 대한 문학의 우위를 주장하고자 『라오콘』을 집필했다.[17]
레싱의 주장처럼 회화나 조각에서 다루는 시간은 특정한 순간일 수 있다. 특히 조각에서 시간은 압축된 채 제시된다. 그러나 삼차원의 환조를 감상하기 위해 관람자는 전체를 관조함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조각품의 주변을 돌며 여러 각도와 높낮이에서 보거나 혹은 가까이나 멀리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 자발적인 움직임에도 시간은 개입한다.
그러나 이용덕이 인식하고 있는 시간은 레싱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그의 관심이 공간 못지않게 시간에 있음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로서 시간의 연속성을 표현한 역상조각을 들 수 있다. 다시 다음과 같은 그의 작업노트를 주목해 보자.
모든 사물은 고유한 시간대를 소유(또는 창조)한다. 특정 시간대를 가진 물질과 그 물질의 이미지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식’이란 관계로 연결된다면, 두 시간대의 상호 이동을 통해 물질이 더 이상 독립적이지 않은 상호적 가역성(reciprocal reversibility)이 이식된다.[18]
그의 작업노트는 비조각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사유가 작업에 중요한 요소임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떠오른 용어가 ‘이식’이다. 이것에 대해 그는 ‘시간의 이동은 곧 이식의 다른 이름’이라고 주장한다.[19]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인지되는 관념인 시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시간은 공간과 접촉해야 하며, 공간은 물질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시간대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대로부터 이식된 조건 아래 존재한다’고 한다. 나에게 그가 말하는 이식은 이동을 통한 병렬이자 침투이며 익숙한 상황을 낯설게 하는 방법, 초현실주의가 개척한 ‘낯선 환경에 놓임(Dépaysement)’과 같은 것으로 비친다.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작품을 예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08년 싱가포르 비엔날레에 출품한 <나는 비싸지 않다(i am not expensive)>는 알루미늄판에 유리섬유, 우레탄 페인트, 네온 조명 등을 이용하여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포츠담광장(Potsdamer Platz)을 배경으로 네 개의 각기 다른 장면을 그려놓은 가로길이 7미터에 이르는 대형 역상조각이다. 브란덴부르크문과 독일 의회 의사당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km정도 거리에 있는 포츠담광장은 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에서 가장 번화한 교통 교차로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냉전체제에서는 베를린장벽이 광장을 양분하면서 일종의 비무장지대인 공터로 남아 있었다. 1989년 11월 9일 처음으로 베를린장벽이 개방된 이후 1990년 5월15일부터 장벽이 철거되기 시작했고, 7월 1일에 동서 베를린의 모든 국경 검문이 폐지되었다. 그해 7월 21일 동독과 서독의 분단 종식을 기념하기 위해 핑크 플로이드의 전 멤버인 로저 워터스(Roger Waters)가 기획한 대규모 자선 콘서트를 준비하면서 포츠담광장에 있던 나치 시대의 주요 시설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용덕이 베를린에서 유학하는 동안 독일인조차 가기를 꺼리던 이 버려진 황폐한 땅은 유럽에서 가장 매력인 장소로 인식되면서 다임러 벤츠(Daimler-Benz)의 개발프로젝트에 이어 소니도 광장에 유럽 본사 건물을 세웠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지켜봤던 그는 싱가포르 비엔날레로부터 초청을 받자마자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포츠담광장을 배경으로 여전히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이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네 개의 패널은 서로 독립된 상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한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을 표현하고 있으므로 서로 연결된다. 왼쪽으로부터 첫 번째 화면의 서로 껴안은 채 춤을 추는 남녀는 작가가 언젠가 이 장소에서 봤던 장면을 역상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 패널에서는 어린이를 업은 어머니의 뒷모습을 역상조각으로 표현하였는데 그 주변의 관광객과 어린이의 모습은 세 번째 패널에서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세 번째 패널에서 반팔 티셔츠를 입은 아이의 전면에 등장하는 푸른색의 자동차는 1950년대 후반에 생산, 보급된 벤츠의 빈티지 모델을 떠올리게 만든다. 마지막 화면에는 남루한 옷을 입은 소년이 상자 위에 앉아있는 모습 뒤로 거리를 걷고 있는 여성과 그녀에 의해 반쯤 가려졌으나 손을 맞잡은 듯한 소녀가 나타난다. 이 네 시퀀스는 모두 한 장소에 각기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사건을 ‘이식’한 것이다. 먼저 춤추는 남녀의 현재성은 네 패널에서 동시에 등장하는 관광객 또는 보행자의 시간과 겹쳐지지만 아이를 업은 여성과 구식 자동차, 그리고 상자 위에 앉아있는 아이의 시간과는 충돌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포츠담광장이란 장소와 역상조각으로 표현한 인물이나 대상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여기에서 마지막 패널의 상자 위에 앉아있는 소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루한 옷에 고무신을 신은 이 소년은 한국전쟁 중 부모를 잃은 고아로서 전쟁의 비극을 표상한다. 미군의 구호품 상자에 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두 개의 사건을 가로지르며 첫 번째 화면의 춤추는 남녀로 향하고 있는 소년의 시선은 네 개의 시퀀스를 연결하는 단서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소년의 손에서 서로 맞닿은 손가락은 이 장면이 만들어내는 푼크툼이다. 이 푼크툼은 소년의 시선과 함께 네 개의 낯선 장면을 관통하며 이 장소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유도한다. 도시에서의 일상 속으로 느닷없이 개입한 네 개의 서로 다른 사건(춤추는 남녀, 아이를 업은 여성의 뒷모습, 빈티지 자동차, 전쟁고아)은 시간의 불가역성을 위반하며 장소와 시간을 결합한다. 그 결합의 방법이 이식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식은 기억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복원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작가는 기억을 현재화시키는 이식의 방법을 시간을 움켜쥐는 것, 즉 현재를 움켜쥐는 것이라고 말한다. 없으면서도 있는 것, 있으면서 없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는 들어간 것(음각)과 튀어나온 것(양각)의 방법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이처럼 낯선 이미지의 병치, 어울리지 않는 상황의 연출, 시간의 불가역성을 역행하며 현재화하는 이식의 방법은 우리를 작품 앞으로 다가서도록 유인한다. 그리고 볼록하게 보이던 인물과 자동차가 실제로는 오목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착시임을 깨닫는다. 이 작품의 제목은 우리에게 이 장소가 지닌 시간, 장소가 환기하는 전쟁의 기억을 복원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간의 간극을 넘나드는 공간과 인물의 이상한 조합, 양각과 음각의 병용은 삼면화 형식으로 제작한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i am still here)>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2008년 스페인 세비아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이다. 조선시대 궁궐을 연상시키는 기와집 마당에 느닷없이 등장한 현대 여성의 뒷모습과 그 위로 깃발처럼 나부끼는 붉은색 천 조각은 데페이즈망의 특징을 드러낸다. 두 번째 패널에서 기차역의 의자에 무료하게 앉아있는 여성과 나란히 앉은 여성의 대조는 무채색과 붉은색의 대조만큼이나 극적이다. 여행객을 암시하는 젊은 여성이 무채색으로 그린 반면, 가채(加髢) 머리에 한복을 차려입고 부채를 쥔 다소곳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여성은 역상조각으로 표현하여 평면과 입체, 양각과 음각, 현대와 과거가 한 화면에 공존하고 있다. 마지막 패널에서 일제 강점기 여성의 노동복으로 이른바 ‘몸뻬’라고 부르던 헐렁한 바지에 고무신을 신은 채 유럽의 어느 거리에 나타난 여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룬 사진을 역상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이 이미지의 원형은 한국전쟁 중 함흥에서 동굴에 감금되어 질식해 죽은 300여 명의 시신을 1950년 10월 19일 유엔군이 꺼내 길거리에 나열해 놓은 시신 중에서 가족을 찾는 여성이다. 시체의 부패하는 냄새에 코를 막으며 망연자실하고 있는 모습은 전쟁의 비극을 그대로 드러낸다. 첫 번째 패널의 하늘에 휘날리는 붉은색 천은 두 번째 패널의 전통적인 의상을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봉건시대 귀부인의 치마 색상과 상응하고, 마찬가지로 첫 번째 패널의 후드티를 입은 채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는 여성의 녹색 신체는 세 번째 패널의 왼손으로 코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 허리춤을 짚은 채 망연자실한 슬픔에 잠긴 여성과 조응한다. 이 작품은 이미 지나간 시간과 그 시간을 살았던 사람의 기억을 현재로 소환한다. 현재와 과거가 혼재하는 공간은 시간을 뛰어넘어 영혼이 넘나들 수 있는 지대이자 우리의 상상력이 깃들 수 있는 여백이기도 하다. 낯선 장소와 지나간 시간의 결합은 작가가 말한 ‘이식’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을 둘러싼 무대배경과도 같은 풍경은 평범하고 해독하기 쉬운 서사를 거부하며 이야기의 미궁 속으로 빠져들도록 유혹한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이용덕이 ‘이식’의 방법으로 제작한 작품에서 서사구조의 단일성, 의미의 직선적 전달과 소통, 매체의 순수성 등과 같은 고전주의, 리얼리즘, 그리고 모더니즘의 규범은 무시되거나 폐기된다. 단일한 것으로부터 다양한 것으로의 이동은 비약과 혼종에 의해 활력을 얻는다. 이동은 이식에 의해 새로운 내러티브의 영역을 개척한다. 그것이 이용덕의 작품이 추구하는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생산한 마력이자 매력이다.
다시 <나는 비싸지 않다>로 돌아가서 입체로 표현한 인물과 자동차는 청색 계열과 흑백의 배경과 병치되지만 전체적인 색조가 어두운 회색이거나 창백한 청색 계열이기 때문에 흑백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애상의 정조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미 지나간 시간이 불러일으키는 애상미는 작품을 보는 이의 움직임에 따라 삼차원의 입체로 바뀌는 음각의 역상조각에 의해 정지된, 따라서 이미 죽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여전히 지속되는 시간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시간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흐름과 상호작용을 느낄 수 있다. 무채색은 이 사건들이 하나의 동일한 시간적 차원에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각기 다른 시간의 이식에 따른 시각적 단일성의 해체, 병치, 교란은 시간적 연속성을 더욱 부각하는 역할을 한다. 각각의 시퀀스는 고유한 순간을 포착하지만 이 순간들은 베르그손의 질적인 시간 개념처럼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침내 관객들은 각 시퀀스가 서로 다른 시간적 흐름을 가진다고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이들이 하나의 전체적 경험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며 시간은 사유가 아니라 경험에 의해 지각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발견한다. 나에게 이용덕은 형상을 만드는 조각가가 아니라 시간을 조각하는 예술가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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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최태만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문화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와 서울산업대학교(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2003년부터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4년 미술평론가로 등단한 이후 많은 비평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여러 학회 저널이나 연구지에도 논문을 기고하고 있다. 부산비엔날레(2004), 창원조각비엔날레(2014) 예술감독, 한국미술이론학회와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회장,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2018)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미술과 도시』, 『미술과 혁명』, 『한국현대조각사연구』, 『미술과 사회적 상상력』등이 있다.
[1] 작가는 2004년에 제작한 작품에서 분리 가능한 네 개의 화면으로 구성하였으나, 2012년에는 하나의 프레임 속에 네 개의 동작을 통합한 작품으로 다시 제작, 발표했다.
[2] 허버트 리드(이희숙 옮김), 『조각이란 무엇인가? 조각, 그 역사적 실증과 이론적 이해를 위하여』, 열화당, 2001, p. 95.
[3] 앞의 책, 같은 쪽.
[4] Lee, Yong Deok, “Transplant”, Depth of Shadow 이용덕 (Exhibition Catalogue), The National Art Museum of China, 2005, p. 21.
[5] 최태만, 「류인 작품의 격정성과 추상충동 재고」, 『인물미술사학』, 2019, pp. 203-230. 참고.
[6] 윤영석, 「관념적 일상의 현현, 젊은 조각가 이용덕」, 『미술세계』, 1988년 11월호, pp. 70-72.
[7] Choi Tae-Man, “Reception of Contradictions and Assimilation of Ego to the Imaginary World”, Depth of Shadow 이용덕 (Exhibition Catalogue), p. 178.
[8] Susan Sontag, “In Plato’s Cave”, On Photography, N.Y: Delta Books, 1977, p. 15.
[9] 롤랑 바르트(조광희 옮김), 『카메라 루시다, 사진에 대한 노트』, 열화당, 1986, pp. 21-22.
[10] 앞의 책, pp. 32.
[11] 앞의 책, pp. 32-33.
[12] 앙리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최화 역주, 자유문고, 2020, p. 39.
[13] Gotthold Ephraim Lessing(1766), Laocoön: An Essay on the Limits of Painting and Poetry, trans. by Ellen Frothingham, Boston: Robert Brothers, 1887, p. 90.
[14] Ibid.
[15] Ibid., pp. 16-17.
[16] Ibid., p. 16.
[17] 김대권, 「문학과 미술의 경계 짓기 –레싱의 『라오콘』과 헤르더의 『비평단상집』제1부를 중심으로」, 『괴테연구』, 한국괴테학회, 2006, pp. 153-154.
[18] Lee Yong Deok, Depth of Shadow 이용덕 (Exhibition Catalogue), p. 19.
[19] 앞의 도록, p.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