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덕 작업노트
-1995 Berlin
Der Sprachverlust
나는 내 작업의 예술적 성취를 통해서 - 사물에 대하여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다각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해도 도달되지 않는 - 기존의 정체성에 대한 개념을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개념‘이나 ’이름‘의 부여를 통해서는 단지 그들의 기능적 차이로부터 이끌어낸 상대적 정체성으로 규정될 뿐이다. 사물을 그의 기능적인 면에서부터 벗어나 보면 관람자에게는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이 인식되어진다. 예술은 인간의 관념의 세계를 전환 시켜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음각과 양각의 조합으로 조각된 인체의 형상을 통해 진행했던 서울에서의 조각 작업을 통한 정체성의 전환을 드러내는, 이러한 기초적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가고 있다.
나의 최근 작업들은 작품을 구성하는 부분으로, 관찰자로서의 나를 참여하도록 이끈다.
집단성의 현상 또는 집단성에 의한 집단적인 판결, 그리고 이념적 판결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하는 것이 나의 주된 목적이다.
I. 기본개념
1. 모든 사람은 자기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 그는 그의 성별, 국적, 직업 등등을 알고 있다. 그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설명들을 모아도 진정한 의미에서 그 인물에 관해 완전하게 규명해 낼 수 없다. 이런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는 것은 단지 우리의 현실과 다른‘관념’의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2. 내 생각에는 ‘관념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완전히 분리된 조건에 있다는 것이다. 관념의 세계는 서로 다른 정체성과의 차이점을 상호 비교함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 있는 것을 – 관념에서 차이점의 구분 가능한 기준에 맞추어 - 경계선을 그어 분류함으로써 존립하게 되는 것이다. 정체성을 규정하는 경계는 매우 협소하고 경직될 수 밖에 없다. 나는 기존의 사고의 틀을 전환시켜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를 통해서 가능성과 새로운 시각을 열 것이다.
3. 나의 생각에는 “변화”와 “차이”는 각각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에 존재한다. 몇 개의 예를 통해서 설명하겠다.
a) 5cm짜리 고무줄을 15cm으로 길게 당겼다고 하자. 이것은 현실세계의 ‘변화’이다. 만약 이 것을 10cm짜리 자와 비교하게 된다면 이것은 처음에는 10cm보다 “더 짧다”가 나중에는 “더 길다”가 된다. 이렇게 상호 비교하는 것을 통해서 개념적인 ‘차이’가 생기며 그것이 다른 정체성을 만드는 근거가 되어준다. 만약 이 고무줄을 20cm짜리 자와 비교했다면 이 두 개의 경우 모두 "더 짧다"라는 정체성을 갖게된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같은 변화를 일으켰다 하더라도 비교하는 ‘기준’에 따라서 다양한 정체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길이”라는 ‘개념‘의 개입은, 변화하고 있는 고무줄을 ‘더 길게‘ 와 ’더 짧다‘로 만드는 것이다.
b) 또 하나 예를 보면: 수도 손잡이를 왼쪽으로 돌렸을 경우, 즉 현실세계에서 ‘변화’시켰을 경우, 관념의 세계에서는 수도의 상태에 대한 정의가 "물이 없는 수도" 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수도" 로 정체성이 변하게 된다. 이것은 ‘존재의 개념‘으로 전환되는 것으로서 ‘있다’ 혹은 ‘없다’로 되는 것이다. ‘변화’가 아니라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c) 세 번째 예를 들면: 어린 학생을 매년 사진을 촬영하여 그 사진들을 나란히 걸어 놓을 경우 이것들은 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동일한 인물의 모습이 보여주는, 시간에 따른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게 된다. 시간에 따라 각각 촬영된 사진이라는 다른 정체성은 본래 실제 세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한 사람의 ‘변화‘인데, 시간에 대한 관념으로 인한 분절의 개념으로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4. 이 예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개념화를 통하여 변화하는 것이 차이라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념이란 실제세계와 관념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장치 인 것이다. 우리가 이 경계 지우는 것을 통하여 현실에 있어 관념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 주목한다. 나는 일상적이지 않는 것, 새로운 사회현상을 보여 주는 순간들을 통하여 내가 주목하는 방식을 해결하는 새로운 개념을 탐색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일상의 인상적인 것을 예술작업으로 표현하는 경우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추정되어지는 것을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발견’하고 싶어 한다. 느낌과 이해를 통해 사람들은 사물과 가까워 질 수 있는 것이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기쁨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이든 관객이 짐작하는 것이든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5. 작업소재
나는 학생을 만드는 작업을 할 때, 왜 나는 하나의 틀에서 이 형상들을 동일하게 찍어내지 않는가라고 자주 질문을 한다. 나의 작업 원리는 각기 다른 관점을 추정해 내는 것으로 다양한 재료들을 비일상적으로 조합하여 드러내는 것이다. 그 형상들은 – 일상의 모습처럼 - 전시공간에 진열되어 진다. 이 낯선 요소들로 이루어진 형상들을 통하여 질문을 던지고 그들 간의 결합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과거’라는 것은 우리와 함께 ‘현재’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며, 무엇인가 현재를 넘어 ‘현실성’으로 존립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사진자체의 ‘사물성’을 통하여 바라보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