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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작업노트
2004

special conversation

쉬지 않고 흘러가는 강물처럼 현재의 모습은 계속 과거라는 벽 속으로 사라진다.
사진이 이들의 잔상이라도 남겨 놓듯이 저장해 놓고 싶다.

사라졌지만 있고, 있지만 이미 거기에는 없는 그들을 현재와 과거의 중간에 영원히...
절대적 진공 같은 공간 속의 존재,

사람은 결국 세상 그 어느 누구와도 접촉되지 않고 타인들 사이에 부유하고 있는 존재이다.
내가 저장하는 순간 속의 인물들은 이러한 절대 고독의 순간과 맞닿아있는 모습이다.
세속의 다양한 순간들을 모두 지워낸 듯이 어느 시간대에도 걸쳐지지 않은 절대 순간,
영구히 한 점의 순간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나에게 [절대고독]은 세탁된 옷감 같은 순간이며, 진정한 아름다움의 순간이다.
먼 길을 향해 떠나고 있으나 결코 떠나지 않는 사람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기다리지 않는 사람처럼 진공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용덕의 작업이 지니는 독특한 면모는, 그러한 음각으로 파여 있는 조각이 바로 과거에 실물이 있었던 '현재적 흔적' 또는 '현장'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실제의 조각을 만들어 내는 대신, '실제 조각의 주변공간을 캐스팅해 낸 작업'이라고도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실물을 떠내는, 즉 '흔적'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현대미술의 경우, 뒤샹, 브루스 나우먼, 리차드 세라, 레이첼 화이트 리드 등이 많이 시도 했었지만, 이용덕의 방식은 그들과 또 다른 방법을 택하면서도 그러한 흔적의 제문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흔적이란 것은 사실 대상(본래의 실제)을 이중적으로 타자화시켜 드러내준다. 우선은 그 흔적 자체가 본래의 실물에 대해서는 타자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그 다음으로 실물 자신이 현재 속에 타자의 자격으로 존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용덕의 경우, 그 음각의 구덩이 자체는 '어느 순간의 모습'(가상적으로 존재했다고 추정되는)의 외부공간을 물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즉 그것은 '어느 순간의 모습'이라는 실물의 외부에 있던 타자적 공간으로서, 이것이 현재 속에 지속하는 양상을 띄고 있다. 반면 양각으로 된 실제의 '어느 순간의 모습' 조각상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지만, '부재와 박탈의 흔적'이라는 형식으로 살아남아서 현재 속의 이질적인 존재로 공존하는 양상을 띄게 된다. 바로 이렇게 이중의 관점에서 타자화되고 이중으로 부정된 형식으로서 대상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용덕의 음각 조각은 '이중의 부정', 즉 '존재 대 무'라는 이분법적 형식이 아니라, '존재의 부정 이면서 동시에 무의 부정'이라는 상호교차형식(chiasm)으로 정의될 수 있다.
- 김 원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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