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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작가노트
2018
INDIVISIBILITY / 불가분성


나는 20대에 원시종교, 동서 고대철학, 인문적 사유 등에 흥미를 갖고 탐구하며 그들로부터 세상을 보는 지혜를 얻고자 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러한 관심이 [존재]에 대해 선명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자라났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논리만이 아니라 물질을 동반한 조각 작업을 통하여 실험하며, 꼬리를 무는 의문들을 지금까지도 풀지 못하고 먼 길을 걸어오고 있다.

초기에는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모순]이라고 규정하고, 음과 양이 어떻게 상호성을 가지고 충돌하고 조화하는지 작업을 통하여 실험을 하였었다. 이 과정에서 지금은 [역상조각]이라고 명명된 독특한 표현 형식이 창안되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음과 양의 원리를 탐구하며, 그 존재의 [양면성]에 주목하게 되고, 음과 양이 만나고 흡수되는 비물질적 상태, 즉 생성과 소멸되는 현상을 중심으로 실루엣을 주제로 한 작업을 발표한바 있다. 이어서 음과 양이 마주하는 위치, 즉 [경계]의 놀라운 역할과 독특한 원리의 세계에 주목하고, 그 실체와 그 전환되는 지점을 찾기 위해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근간에 들어 이러한 구분을 이루는 경계, 그리고 이 경계에 의해서 나누어지는 양측이라는 규정이 성립 가능한 것인지 회의를 갖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동의할 수 없었던 고대그리스 철학자 Parmenides의 [존재론]을 소급하여 애증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 동안 작업을 통한 사유와 조각이라는 물질을 통하여 실험해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짐작하게 된 내용과 이 고대 철학자의 독선적인 논리들을 나란히 놓고 살펴보았다.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불일치를 느꼈지만, 그의 존재의 불가분성에 관하여 자의적인 해석으로나마 동의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 것은 큰 소득이 되었다.
고대그리스 철학자의 원론적인 존재론의 논지를 실존과 현상학적 인식론에 젖어 사는 현대인이 정반대 지점에서 연결고리를 찾아 회귀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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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우

상 하

정 배

내 외

음 양





손바닥과 손등을 나누는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경계를 찾기 이전에 손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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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짓기가 가능한가?




가능하다는 것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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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경계가 없다면 나누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좌와 우

위와 아래

안과 밖

이것과 저것


그러므로 이들은 하나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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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menides가 존재는 전체가 균일하고 연속적이어서, 빈틈이 없으니 분리가 불가하다는 것인데, 경계는 빈틈을 만드는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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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이라는 이름을 지어 부를 수는 있지만, 이름들이 곧 존재 자체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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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란 가상인가?




경계란 규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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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경계는 어떻게 정의 내려지는가?





Today is Tomorrow's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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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

수평선을 잡으러 달리는데, 과연 닿을 수가 있을까?

이미 그 위에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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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떠가는 달을 깜박 잊고 살았는데, 오늘도 달은 여전히 하늘을 떠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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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 여기의 2는 보통의 2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나간 1을 대신하는 2인 것이다.





1에서 1을 빼면, 0이 되는가?

1-1=0 ≠ 0

‘없다’가 아니라 ‘없어졌다’가 되는 것이다.

본래 없었던 존재와 있다가 없어진 존재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Parmenides는 있다가 없어진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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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을 뒤집으면 감옥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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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ng on the Threshold / Auf der Schwelle s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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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ogyny US [ændrɑ́dƷəni]

[명사] [U] 남녀 양성구유; [식물] 자웅 양화(兩花) 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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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비치고, 사진 속에 찍혀있고, 기억 속에 있다 해서 내가 그 속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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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만을 남기고 있다면 그 것은 없어진 존재이며, 이 수식어는 수학의 0으로 설명될 수 없다.

즉 모든 존재는 ‘실재’ 혹은 ‘흔적’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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