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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 작업노트
-1988

발견하여 간직하도록····

어린 시절 ‘눈 그리기’에 몰두 했던 적이 있다.
작은 구슬 크기의 검은 눈동자에는 어둠에 구멍이 난 창문이 비치고 높은 하늘의 구름도 담겼다.
신비한 기억들이 ‘내가 그리는 눈’에 쉽게 만족할리 없다.
그리고 또 그리고, 관찰하고, ‘눈 그리기’는 계속 되었다.
그 시절부터 내가 본 모든 것은 나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어 언제든지 되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었다.
이웃집 아저씨, 헐어 뒤틀린 토담벽, 행패 부리던 상이용사, 창공을 나르던 비둘기,
어머니의 거친 손과 반찬 종지, 새벽 서리 맞은 풀잎,······

도심의 분주히 걷는 사람들 사이를 나도 바삐 걸으며 생각한다.
줄지어 오른 버스 안에서 나도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한다.
어시장 질척한 바닥을 조심스레 디뎌 걸으며 비린 생선 향기 속의 아줌마들을 본다.
신문을 펴들고 글자들을 읽어 내려간다.
신 앞에 조용한 죄인이 되어 초라한 기도를 올린다.
“우리에게 예지의 비를 내리소서.”
“우리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살펴주소서.”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맑게 닦인 마음으로
「사랑의 색」, 「희망의 빛」, 「고통의 맛」, 「의지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점토를 손에 쥔다.
적요한 무한 공간 속으로 먼 여행을 떠난다.
지금 이 자리에 되돌아올 점토의 모습은 나에게 무엇을 발견하여 간직하도록 해줄까.
애초에 내가 만들고자 했던 모습을 믿지 않는다.
점토가 이야기하고 나는 귀 기울여 알아듣는 것이 대견할 따름이다.
다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 변해 왔듯이 이후에도 변해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명상은 나에 대한 최선의 그리움인 것
내가 하는 일을 ‘이름’으로 치장하려 하지 말자.
나의 체험이 신작로를 피해 오솔길을 홀로 거닐 것을 기대하자.

신 앞에 조용한 아들이 되어 다정한 기도를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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