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동: 이용덕의 형상화(形象化)
Robert C. Morgan, 미술비평 및 기획자
이용덕의 형상(形象)조각에는 뚜렷한 형이상학(形而上學)적 긴장이 있다. 긍정과 부정, 빛과 그림자, 물질과 비물질과 같은 상반되는 것들 간의 긴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도교(道敎)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상반되는 것들은 실제로 동일한 현상의 총체적 부분이고, 동일한 기(氣)의 발현이다. 서양철학에서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물리학의 원리를 초월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범주(範疇)이다. 현대적 표현을 쓰자면 형이상학은 한 순간에 시공(時空)을 무한대로 계산하는 것이고, 아날로그였던 정보를 디지털로프로그램하여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형이상학은 사람들의 일상경험에서 우연한 만남의 형태로 나타나는 시간의 돌발사건이다.
21세기의 다른 순수 화가나 순수 조각가들의 작품과 비교할 때에 이용덕의 하이브리드 형상조각이 차별화되는 것은 단순히 작가가형이상학적 만남을 특출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용덕은 어린이들이 뛰어다니고, 깡총깡총 뛰거나, 가까이에 있는 물건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환상적인 형식을 부여해서 그 이미지가 관객에게 다가가게 만들고, 이 이미지들의격렬한 움직임이 주어진 공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도록 만드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접근용이성은 친근감의 병적(病的)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 어린이들이 몸을 움직이거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돌아다니는 것과 같은 일상적 이미지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시간의 우주 속에서는 “실재(實在)의 유혹”, 즉 시각적으로 끌리는 것들이 일순간 다가온다. 관객은 이것들을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친근하게 부딪치는 자극들과 연결시킨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상(日常)내에 있으면서도실제로는 거시적(巨視的) 세계, 즉 인간존재를 사고와 감정의 성운(星雲)으로 확장시키는 시간의 우주와 외부적으로 연결된다.
이용덕이 20여 년에 걸쳐 왕성하게 내놓은 작품들을 살펴보면 여기에 구현되어 있는 과학, 수학, 통찰, 각성, 감수성에 놀라게 된다.작품의 생동감 있는 인물들은 표면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표면에서 나오기도 한다. 이용덕의 작품들은 대부분 FRP, 석고와 기타 재료를 섞은 혼합물을 사용해서 제작한 패널에 만들어진다. 가끔 작품의 성격에 따라 테라코타, 석고, 나무 등에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인터뷰에서 작가가 설명한 것처럼, 표면은 항상 출발점이고 위아래로 더해지고 빼진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표면에서 튀어나와 양각(陽刻)을 만들거나 표면을 파고 들어가 음각(陰刻)을 만든다. 이것은 존재(存在)와 부재(不在)의 융합이다. 이용덕 작품의핵심 철학이다. 도덕경(道德經)에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물은 존재(存在)로부터 태어나고, 존재(存在)는 부재(不在)로부터 태어난다.”
2005년의 인터뷰에서 이용덕은 작품을 구상하고 발전시키면서 거쳤던 철학적이고 영적인 과정을 자세히 언급했다. “나는 음각과 양각의 조합이 고형(固形) 이미지를 표현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후 이런 관점에서 사물을 관찰하니까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음양(陰陽)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용덕은 음양조화에 대한 인식을 통해 조각이라는 실질적 세계에서 감정의 은유(隱喩)적 세계로 옮겨갔다. 이에 따라 그의 조각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인간의 감각(human impulse)에 대한 인식이 되었다.
이용덕이 도덕경을 거론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것이다. 인터뷰에서 작가는 대상들을 음각으로도 양각으로도 조각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각과 음각을 혼합하는 3차원 작품은 중심을 향해 압축된다. 따라서이것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공존(共存)이 된다”. 대상들을 조각으로 표현할 때에 균형감각은 작가의 일상 작업활동에서 핵심적인요소이다. 이용덕은 이것이 형식을 갖추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추가성분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인물들의 형태를 이리저리 만들어내는 것은 형식적이면서도 대단히 기술적인 과정이다. 이것은 또 실제적이면서도 시간성의 문제이다. 대상이 제시되는 방법은, 작가가 도시의 길을 걸어 다니면서, 혹은 고독 속에 휴식을 취하면서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에 따라 전적으로 결정된다. 이용덕은 날카로운 심리학적, 현상학적 호기심을 갖고 현실 속의 인물들이 시간이동을 통해 움직임, 지성, 느낌, 영성(靈性) 등이 포함된 ‘관찰된 현실’이라는 에너지의 합성으로 발현될 때까지 대상을 관찰한다.
이용덕의 부조(浮彫)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 속의 잔재(殘滓)적 존재이지만 절대적 강렬함 속에 석조(石造)와 같은 질감을 준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상대적으로 묶여 있다. 사람들은 인간의 몸에서 시간을 느낀다. 공간이 시간을 둘러싸면서, 또 시간과 연결되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간적 연속성이 없으면 시간성도 없어진다. 이용덕의 많은 부조작품들은 대상들의 생동감과 동학(動學)적 움직임을 개별적 공간으로 구현해내는 능력에 힘입어서 만들어졌다. 그의 최근 작품들은 개별 대상들이 공간에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특한 인상을 심어준다.
물론 이것이 이용덕 작품의 유일한 주제는 아니다. 그의 조형적 상상력은 대상을 만나고 영감을 느끼는 한 어느 방향으로든 펼쳐진다. 독특하면서 독립적 작가인 그의 경력이 이미 말해주는 사실이다. 그의 유명한 kl.k.7d.24.10 1920 berlin (1995)에 전시되었던 작품들을 보자. 이용덕은 1차대전 직후의 독일 사진에서 본 7-8살 되는 소년들을 석고에 머리를 투사시켜 33개의 테라코타로 옮겨놓았다. 뇌리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게 호소하는 작품이다. 단순히 시간이동을 시켜놓았기 때문 만이 아니다. 소년들이 줄 서 있으면서 함께 느끼는 심리적 긴장감이 통일적으로 다가오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형상화에는 살아있는 감각이 있다. 작가는 베를린의 벼룩시장에서 이 사진을 보았을 때에 느꼈던 것을 설명한다. 소년들의 이미지가 시간의 창(窓)을 통해 작가를 이동시켰고, 작가는 사진이 찍어졌던 당시의 소년들과 연결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처럼 개별대상들이 줄 서 있는 모습으로 조각을 구현하는 데에서드러나는 힘과 결단력은 이용덕의 현재 작품들에게까지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동’이라는 주제는 이용덕의 작품세계에서 흥미진진하고도 중요한 단면이다. 예를 들어 개별인물들을 다룬 3차원적 부조들은 사진에서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관계로 비교해볼 수 있다.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사진도 이동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속의 시각 세계에서 인상(印象)이 추출된 뒤 이미지로 이동한다. 이 과정은 일종의 추상적 의식(儀式)으로서 기능한다. 문자메시지가 두 사람 간에 실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의 추상으로 기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상(印象)은 기술적이거나 다른 적절한 수단들을 통해 의식(儀式)의 공간으로부터 이동해서 자신의 공간과 인상적 대상을 새로 확립한다. 이 의식(儀式)을 행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창조과정에서 나타나는 유동적 자각(自覺)상태를 향해 의도적으로 움직여간다.
이용덕의 조각품들은 관찰대상을 3차원의 형상물로 변환시켜 미리 볼 수 있는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인터뷰에서 이용덕은 “내가 네거티브를 암시하면 관객들은 포지티브로 반응한다”고 말한다. 미술은 “시간이동현상”이라고 하는 작가의 미술관과 직접적으로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는 “내가 구사하는 언어에서 이중부정은 강력한 긍정이다. 여기에서 부재(不在)와 부정(否定)은 다른 의미를갖고 있다. 둘 다 독자적으로는 있을 수 없고 반대 입장, 즉 대척점(對蹠點)이 있어야만 한다. 이중부정은 같은 부정을 두 번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입장을 반복하는 것이다”.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을 사진 찍게 되는 관찰의 정확한 순간과, 실제의 시간과 공간에서 디지털프린트로 변형되고, 양각의 3차원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음각의 형판(型板)이 만들어지고, 양각의 조형물로 태어나는 것들간에는 일종의 전기적 순환이 있다. 예술가는 형상화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확실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동시에지각(知覺)에 대해 의심의 분위기를 표현한다:
“내가 보는 것은 사실인가?
내 촉각을 통해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인가?
내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인가?”
이용덕의 관점에서 확실성은 완전히 확실한 것이 절대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 내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이 작가가 출발점으로 받아들이게 된 몇 가지 기본전제들은 있다. 시간이 대상과 연관되어 흘러가면서 관객들은이동의 의식(儀式) – 이용덕은 이를 “이동축”이라고 표현한다 – 을 이해하게 된다. 과거가 환상의 순간으로, 구체적인 현실로, 또 현존(現存)과 부존(不存)이 공존하는 형이상학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지각자(知覺者)로부터 실제로 지각되는 것으로, 즉, 피지각물(被知覺物)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현실은 또 다른 차원의 이해로 나타난다. 이용덕에게 있어서 이 과정의 목표는 “부재(不在)를통해 [인간 형태의]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노자(老者)의 세계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우리는 존재(存在)로 일한다. 그러나 부재(不在)가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다”
지각(知覺)에 대한 인식은 개인들이 마음 속에서 지각한 것을 파악하는 능력, 즉 이를 멈추고 정지시킬 수 있는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철학자 에드문트 후썰은 지각이 아이디어가 되도록 환원을 통해 제한시키는 현상학적 방법을 고안했다. 이것은 지각되는과정에 있는 사물 혹은 인간의 본질(eidos)을 추상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용덕이 만들어내는 인물상들은 감각에 대한 일종의 초(超)감각적 호소를 통해 구현된다. 이들을 감각으로 느끼는 것은 존재가 실재(實在)가 되고 그 존재적 기능을 알게 되는 지각과정에본래부터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용덕은 “일반인들의 삶이 내 작품의 중심이다. 이들은 항상 혹독한 단절이라는 형태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통합성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은 이중성의 환상, 혹은 지각자와 피지각물을 분리시키는 서양 사상에 의해 도전 받아 왔다. 이용덕은 이 난제(難題)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종종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할 때에단순히 그의 행동에 관심을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가 ‘누구’인지 그가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관심을기울여야 한다”.
대상이 제시되는 방법은, 작가가 도시의 길을 걸어 다니면서, 혹은 고독 속에 휴식을 취하면서 대상을 관찰하는 방법에 따라 전적으로 결정된다. 이용덕은 날카로운 심리학적, 현상학적 호기심을 갖고 현실 속의 인물들이 시간이동을 통해 움직임, 지성, 느낌, 영성(靈性) 등이 포함된 ‘관찰된 현실’이라는 에너지의 합성으로 발현될 때까지 대상을 관찰한다.
이용덕은 2005년 전시 도록(그림자의 깊이, Depth of Shadow)에서 시간이동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시간이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절단(切斷)을 통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가거나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는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아날로그적 변화가 아니라 디지털적 변화이다. 디지털적 절단의 원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적 시간과 공간은 실재(實在)와 다르다. 이것은 존재라고 불리는 실재(實在)를 해체했다가 다시 조립한 이미지이다. 이 실재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 디지털화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마음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용덕의 파이버글래스 부조(浮彫)작품에서 느껴지는 현혹적인 단순함이나 아이같은 순진함은 이런 시간이동의 중량을 제대로 담고 있다. 그의 기본 전제는 창조 과정이 항상 특정한 촛점 – 이용덕의 경우에는 인체의 이미지- 을 두고 시간상에서 이루어지는 연습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이중부정은 작품 속의 인물이 시각적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평면적 공허, 즉 음공간에 거주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인체상이 볼록하건 오목하건 간에, 여기에는 끊임없는 깊이가 있다. 지각자(知覺者)의 시선이 인체에만 머무르든, 부조의 주변을 어른거리든 상관없이,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은 음(陰)적인 과정이다. 공허 속에서 양(陽)적 에너지를 찾고, 진공을 통해 발산되는 자연의 영원한 생명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주: 이 글에 나오는 이용덕의 인용구들은 “그림자의 깊이”(Depth of Shadow: 중국국립 박물관과 표화랑이 기획한 2005년 전시도록)와 “그림자의 뒤”(Behind the Shadow: Biljana Ciric과의 대화, Shui Jitian 번역, Ali Raleigh Cornell 편집)에서 나온 것임. 도덕경의 인용구들은 Stephen Mitchell 이 번역한 ‘Tao Te Ching’(1988년, Harper Collins 발행)에서 나온 것임.
필자 소개:
로버트 C. 모건은 1978년 뉴욕대학교에서 미술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국제적인 미술 평론가이자 예술가, 큐레이터로 활동하였다. 2005년에는 한국 현대미술의 원천으로서 전통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풀브라이트 펠로우 십을 수상했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에서 처음 출간된 그의 저서 『예술, 관념 속으로』(1996)는 한국어로 번역되어 서울에서 JRM에서 출간되었다(2007). 그의 논문은 미국 최초로 개념미술을 연구한 논문이었다.
